아 띠지 찢어짐 ㅜㅠㅠ

 

우키북스의 독후감 - 엘리펀트 헤드 편

 

 

와.......

일단 감탄부터 좀 하고 가겠다.

정말 재밌다.

필력이 미쳤다.

몰입감이라는 걸 이토록 진하게 느껴본 것은 정말 모처럼인 것 같다.

띠지에 적혀있던 "악마가 소설을 쓰면 분명 이럴 것이다."

라는 글귀 하나만 보고 꽂혀서 구매했던 도서.

그것이 나를 이토록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줄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주인공 기사야마는 겉모습이 너무나도 멀쩡한 악마이다.

좋은 직업에 준수한 외모.

아름다운 배우자는 물론이고 사랑스러운 두 딸로 구성된 화목한 가정까지.

남들이 부러워할 요소들을 두루 갖춘 그야말로 엄친아의 전형이지만,

그의 진정한 모습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같이 여기며, 그릇된 성관념을 가진

끔찍한 범죄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는 그것을 너무나 훌륭한 필력으로 표현해놓았다.

 

이 소설은 어떻게보면 복잡하기 그지없다.

마약, 살인, 이상성욕까지는 싸이코니까 그렇다고 하겠지만, 이것을 넘어

양자역학, 양자얽힘, 시간선의 분기에다가 절대자의 존재까지 파악을 하여야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들이 시간을 파악하는 대뇌속 피질분할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도 자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심지어 각 분기된 시간선상의 기사야마가 하는 행동들 또한 모두 주시되고 있다.

어지간한 스토리텔링 파악으로는 어느새 책 위를 헤매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기 딱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래야만 하는데 말이지......

 

이런 내용이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나?

그 복잡함이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기사야마 A의 시간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점적으로 우리는 보게되지만, 기사야마 B와 C, D까지 이어지는 4가지의 분기된 시간선은 결국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시간선을 생활하기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4가지의 일을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헷갈리지가 않는다.

작가의 필력이 여기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빨려들듯 읽어내려가지는 문장의 필력 자체도 우수하지만, 이런 수많은 이야기의 복잡한 시간선들을 독자가 파악해내는 것을 절대 어렵게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들.

각각의 시간선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시간선의 사건을 간섭한다.

양자얽힘의 내용이 펼쳐지는 것이다.

둘째딸, 아야카의 폭발.

그것은 상당히 기괴하다.

우리가 보는 기사야마 A의 시간선에서 아야카는 길을 걷다 이유없이 터져버린다.

즉, 다른 시간선상의 어떠한 아야카가 폭발한 채, 사망을 해버렸다는 거다.

그것이 다른 시간선이지만, 결국 모든 가능성이 중첩되어있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서로의 생활에 간섭을 일으키는 것이다.

벌써 어지럽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이 전혀 어렵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가의 내공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했다.

 

최초 띠지에서 발견한 "악마가 소설을 쓰면 분명 이럴 것이다."라는 문구.

이 한줄이 정말 이 소설을 표현하기에 딱인 내용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 반전이 주인공 기사야마의 추악함에서 모두다 비롯된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는 경악이 읽는 내내 내 입을 벌리게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가상의 현실이지만, 이 작가의 어두운 상상이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가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독서에 입문하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재미 없다고 느껴지는 행위 중 대표적인 하나가 독서이니 말이다.

그리고 독서를 권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좋은 책을 읽으라고도 말한다.

근데 난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좋아하여 이렇게 늘 독후감도 쓰고, 이런 계정도 운영하지만......

꼭 좋은 책만을 읽어야 하나?

그냥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닌가?

재밌는 책을 읽으며 독서에 재미가 붙으면, 결국 흔히 이야기하는 좋다는 책들도 읽어지게 될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난 장르소설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런 추리 미스터리 소설도 좋으며, 나아가 SF와 무협지, 하물며 판타지까지.

일단 읽어보시라.

그리고 그 시작으로 이 소설도 강력하게 권한다.

뭐, 내용이 워낙 극악무도하여 얕은 정신력으로는 계속 읽어내려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근데 생각해보면 영화는 그러한 것들을 곧잘 찾아보지 않는가?

내용이야 문턱이 높을 수 있지만, 재밌는 독서를 시작하기에 이 소설은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거라 자신한다.

아, 미성년자는 읽지마시길.

 

뭐, 어쨌든!

이 책은 정말 너무 재밌다.

근래 들어 읽은 소설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감동이나 교훈 따위는 없다.

그냥 재밌다.

이 계정을 운영하면서 가장 먼저 쓴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SF소설은 재미도 재미지만, 그에 걸맞는 감동과 서사가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런거 없다.

그냥 압도적으로 재밌다.

그리고 신명나게 읽힌다.

한 해의 시작과 함께하기엔 다소 무거운 내용일지는 모르겠으나,

재미 하나는 무조건 보장하니, 장르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무조건 구매하시길 바란다.

나는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장바구니에 넣어놓았다.

 

#엘리펀트헤드 #시라이도모유키 #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일본소설 #명작

 

"엘리펀트 헤드"

 

▶저자 : 시라이 도모유키

▶장르 :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

▶출간 : 2024년 10월

▶소개 :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여 충격적인 전개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작 소설.

 

▶줄거리 :

정신과 전문의인 기사야마는 화목하고 완벽한 가정을 유지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든든한 아빠로 존재하며 배우인 아내와, 가수인 큰딸, 그리고 어여쁜 막내딸과 함께하는 그 삶이 그를 더욱 윤택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의 그는 잔혹한 살인마이자,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도덕적 가치의 기준도 두지 않는...... 그야말로 사이코패스 그 자체이다.

 

어느 날, 큰 딸 마후유는 남자친구를 데리러가는 중이었다.

그 날은 마후유의 남자친구를 가족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가족들 모두는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었다.

 

"....어? 그때 저한테 만엔 주셨던 아저씨 아니세요?"

"......"

 

처음 만난 딸의 남자친구가 처음 한 말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기사야마가 돈을 쥐어주고, 비틀어진 성욕을 풀어낸 대상이었고, 둘의 추악한 만남을 가족들 모두가 알게된다.

 

시간을 거슬러 기사야마는 한때 즐겨 찾던 마약상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는 이번에 새로 나온 신제품을 기사야마에게 소개시켜주었는데, 50%의 확률로 상상을 초월하는 쾌락을 선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쾌락이 어찌나 강렬한지, 50% 확률로 쾌락에 당첨된 사람은 그 쾌락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뇌를 뽑는 일까지 발생한다고도 말했다.

정신과 의사인 기사야마는 그것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의 유희는 될 수 있을 것 같아 남아있는 두개의 앰플을 모두 구매한다.

 

다시 돌아온 시간.

가족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한 기사야마는 도망치듯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살던 저택으로 향한다.

현재 그곳은 기사야마 범죄의 온상이 되어 있는, 일종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였다.

기사야마는 그곳에서 마후유의 남자친구를 저주하며 좌절하다가, 불현듯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앰플을 떠올렸다.

어차피 망친 가족사.

쾌락이라도 느껴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사야마는 망설임없이 앰플을 맞았다.

그러자 머릿속 생각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50%의 당첨.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뜬 기사야마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마후유의 남자친구를 기다리던 오전의 그 시간으로 돌아와있었기 때문이다.

 

▶추천 대상 :

1. 평소 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

2. 장르소설을 특히 좋아하시는 분.

3. 고어하거나, 매우 부도덕한 장면에 인내력이 있으신 분.

4. 책으로 한편의 영화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

 

▶비추천 대상 :

1. 정신없는 것이 싫으신 분.

2. 추악한 범죄의 장면을 상상하는게 달갑지 않으신 분.

 

▶우키북스의 한줄평 :

완독 후 시라이 도모유키의 책들을 모두 구매 장바구니에 넣었다.

 

 

#엘리펀트헤드 #시라이도모유키 #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일본소설 #명작

 

 

우키북스의 독후감 - 천국보다 성스러운 편

 

 

불편하다.

툭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 책은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다.

성은 평등해야한다.

하지만 다름은 인정해야 한다.

남자라서 못할 수도 있고, 여자라서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니까 안해선 안되고, 여자니까 안해서도 안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분명 남성과 대비되는 핍박을 받아왔다.

오죽하면 역사를 뜻하는 영단어가 History겠는가.

모든 역사적 과정이, 여성들을 배척하고 남성들을 내세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그건 우리가 부정해선 안되는 명확한 현실이고, 팩트이다.

심지어 미토콘드리아로 확인되는 생물학적인 전달은 모계에서 진행되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이유가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못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을 하여 전 대륙으로 펼쳐지게 된 이유는 보통 사냥감의 이동을 예로 든다.

사냥을 시작한 인류는 자연스레 생물을 포식하기 시작했고, 그와 맞물려 서로간의 경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도태된 무리는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즉, 무리의 온전한 취식을 위해 펼쳐진 어쩔 수 없는 자연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에는 폭력이 뒤따르게 된다.

물론 단어가 주는 불쾌감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약육강식은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보이는 폭력이다.

그것은 자연생태계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다.

강자는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 약자를 사냥해야했고, 약자들은 다른 방패들을 만들어내 강자에게서 도망쳐야했다.

인류는 강자의 위치에 있었고, 그 하루의 사냥을 성공해야만이 자신이 속한 무리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찌해야겠는가?

사냥의 성공률이 높아야만 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며, 힘이 더 강한 남성이 바깥으로 나가 먹잇감을 구하는 행위를 하여야, 성공률이 더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무리의 생을 이어준다.

그리고 그러한 바탕은 서로의 무리를 구분하면서 같은 인류에게도 적용되는 현상이 되어버린다.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 무리에게서 승리를 해야만이 우리의 무리가 강녕해지고 평안해진다.

그러려면 승전율을 올려야 할 것이고, 자연스레 상대적으로 힘이 더 강한 남성이 전면에 배치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다름'이다.

그 시간에 그럼 여성들은 놀고 있었나?

그렇지 않다.

남성들이 더 잘 싸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을 하게 되겠지.

결국 그 무리의 모두가 노력하여야만, 무리의 승리가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간은 흘러갔고, 자연스레 바깥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남성들은 오만해져갔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인 것이다.

어떤 시기의 여성들은 짐승만도 못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또 어떤 시기의 여성들은 투표를 할 수 없었으며,

또 어떤 시기의 여성들은 똑똑해도 부질없었다.

남성들은 그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의 출발이 바로 그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페미니즘은 틀렸다.

그것도 한참을 틀려먹었다.

여성의 차별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은 어느덧 남성을 혐오하는 기준치로 변질되었다.

'래디컬'이 붙어버린 것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딸을 낳았다고 좌절하고, 부엌은 여성만의 공간이며,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즉, 세상이 변했다는 거다.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인식 또한 변한다.

그런 과정에서 더디지만 천천히 우리는 성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혐오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소설도 남성을 절대자로 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소개되는 남성들은 모두 지저분하고 한심하다.

그에 반해 여성들은 안쓰럽고 고결하다.

...... 이것이 평등인가?

그동안 여성은 소중하게 대해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여성들은 소중하게 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남성 또한 소중하다.

우리 모두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고, 같은 인류이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평등을 논하려면 불평등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대상이, 평등의 위치에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불평등의 위치로 끌어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많은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의 생각은 그러하다.

작금의 페미니즘은 틀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글러먹었다.

페미니즘이 대한민국에 퍼지면서 성평등은 더욱 멀어졌고, 서로에 대한 혐오만 남았다.

성평등지수가 매우 낮은 국가......

그건 페미니즘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성평등을 알리고자 하는 방식 또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한 사람의 성인이고, 남성으로서 사랑하는 아내를 맞았다.

난 세상에서 그녀를 제일 사랑하고 아낀다.

그녀 또한 내품에 안겨 있을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맞지?)

그리고 함께 밥을 지어,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요리를 함께 즐긴다.

각자의 일이 있을 때는,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 내가 남자라서, 내가 여자라서, 나의 배우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행복하게 살아갈 뿐이니까.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그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성평등이다.

이 소설의 방향성은 그래야만 했다.

 

 

#천국보다성스러운 #김보영 #소설 #SF #사회 #이슈 #평등 #차별 #혐오

 

 

"천국보다 성스러운"

 

▶저자 : 김보영

▶장르 : SF소설

▶출간 : 2019년 3월

▶소개 : 한국 SF의 거장이라고도 할 만한 김보영 작가의 짧은 장편소설로, 신이 만약 성차별 주의자라면? 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풀어나가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

 

▶줄거리 :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 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가지 이야기.

 

영희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는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다.

아버지는 흔히 이야기하는 실패한 인생을 산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장이고, 남자였기에 그 어떤 가사노동도 하지 않는다.

영희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오늘도 밀린 집안일을 하며 밥을 차린다.

 

그리고 먼 미래.

남자는 정체모를 곳에서 눈을 뜬다.

알고보니 현재의 시점은 인류가 절멸하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AI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기였다.

AI들은 자신들을 만들어낸 인류를 '신'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되살리려고 노력하였는데, 남자는 그런 그들의 부름에 부응하듯 눈을 뜬 것이다.

남자는 상황을 파악한 후, 자신이 절대자라는 것을 깨닫고는 AI에게 명령을 내린다.

"여자의 모습을 한 로봇을 데려와."

 

갑자기 하늘에서 '신'이 나타났다.

'신'은 거대한 석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그 '신'을 바라본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며 기억을 잃은 자신의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은 억압된 여성과, 아이, 성소수자였고, 남성의 모습을 한 '신' 그 자체도 그들의 동료였다.

그들은 약속을 어긴 동료인 '신'을 꾸짖으러 발길을 옮긴다.

 

한편, TV중계로 갑자기 나타난 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영희의 아버지는 나즈막이 중얼거린다.

"역시 신은 남자였어....."

 

▶추천 대상 :

1. 단편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

2.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에 어려움이 없으신 분.

3. 읽은 내용을 하염없이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으시는 분.

 

▶비추천 대상 :

1. PC요소나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신 분.

2. 페미니즘에 대한 과한 거부감이 있으신 분.

3. 레디컬 페미니스트이신 분.

 

▶우키북스의 한줄평 :

평등이라는 단어는 동등함을 전제해야 하는데, 왜 늘 어느 한쪽의 격하로 이뤄져야 하는걸까?

 

 

#천국보다성스러운 #김보영 #소설 #SF #사회 #이슈 #평등 #차별 #혐오

영풍문고에서의 착잡한 마음을 애써 자위하며

근처 독립서점인 '최인아 책방'을 찾았다.

 

 

 

 

 

이 곳은 독립서점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규모가 있고,

이것저것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른바 꽤나 성공한 독립서점 중 하나였다.

 

 

 

 

 

일반 독립서점과는 다르게 많은 책들이 있었고,

이 곳에서 추천하는 그 월의 도서 같은 코너도 있었다.

거기다 나름 접근하기 어려운 한강 작가의 책들에

간단한 줄거리를 써놓으면서 수월하게 한강 작가의 책을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 점은

매우 친절한 요소 중 하나였다.

 

 

 

 

 

사장님이신 최인아 님의 책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여기서는 상당히 풍요로운 마음으로

책을 구경할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구매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두 권을 구매했고......

독립서점 만의 맛인 도장 찍기도 완료!

그리고 이 곳이 특히 좋은 점은

카페를 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구매하고 2층에 올라오면

주문한 음료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

거기다 책을 구매하면 음료가 20% 할인도 되니

커피와 책을 즐기기 참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 때문에 서울에 갔다가 여니랑 하루 놀고 왔다.

코엑스에서 커피에 베이커리를 먹는데, 바로 맞은편에 영풍문고가 있는게 아니겠는가?

구경해줘야 인지상정이다.

 

 

 

 

'종의기원'의 정유정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고 한다.

체크해둬야겠다.

 

 

 

 

영풍문고에서 확인하는 베스트셀러들.

 

 

 

 

잘 보고 나왔는데, 따로 구매를 하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섹션 정리도 좀 복잡하게 되어있었고,

책찾기 인쇄도 뭐가 문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거기다 직원도 영 불친절하더라고.

 

 

 

울산 성남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파밀'에 방문해보았다.

 

 

영업시간 : 수목금토 14:00 ~ 18:00

 

대다수의 독립서점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영업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방문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본인의 직장은 이 곳 성남동이기에 다행히 편안히 다녀올 수 있었다.

 

 

 

파밀은 임은영 작가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독립서점이라

그 분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나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이번에 출간하신 '팔월의 이안류' 소식을 듣고 당 서점을 방문하였다.

 

 

 

해봐야 3평 남짓의 아주 협소한 공간이지만,

나름의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독립서점 파밀.

주를 이르고 있는 서적은 문학류이니,

문학을 좋아하시면서 성남동을 방문하시는 기회가 있다면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울산 #성남동 #파밀 #독립서점 #서점 #책방 #임은영 #소설 #문학

 

 

우키북스의 독후감 - 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 편

 

 

참 사연들도 많다.

세상 천지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 것이며, 고생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제목과는 다르게 이 동네 사람들은 참 사연이 많다.

근데 또 가슴 아픈 건, 이런 것들이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작품은, 책의 분량과는 다르게 제법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 모두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인물인 '원석'은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내이다.

물론 그것이 삐뚤어진 심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한 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그 사건에서 피해자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갸륵한가.

하지만 그 죄책감이 너무 컸었나보다.

조금이라도 그 때의 상황과 오버랩이 되는 상황이 생기면, 모든 일을 젖혀두고 자신이 임의로 정한 그 '피해자'에게 집착을 한다.

깊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의 주요사건을 만들어내게 되는 '서심'과 '이순'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심은 아무래도 만삭인 여인이다보니, '어린아이'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풍부해져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아이가 힘든 모습을 보면 크게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는 여러 이유로 울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역시 깊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순은 자신의 어린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을 버리듯, 집을 떠나왔으니, 염치가 없다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고통을 받는 아이가 있다면, 과거 자신의 아이들이 투영되어 잘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마찬가지 깊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생각은 모두 선함에서 시작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모두 '아이'를 향한다.

그렇다보니, 길가에서 목놓아 엄마를 찾으며 우는 '유정'을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

이해한다.

나라도 그런 아이를 보면 관심이 갈테니까.

 

그런데 '종규'는?

유정의 아빠 종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태어난 자식도 보지 못한 채, 망망대해를 떠돌며 참치를 잡았다.

그리고 귀국을 하던 중, 자신의 가족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종규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안타깝게도 유정과의 유대는 없다.

유정은 어린 나이에 조부모를 잃었고, 엄마는 사경을 해맨다.

그 와중에 처음 보는 '아빠'란 사람이 반갑게 느껴질 리가 없다.

종규 또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유정을 돌봐야 했기에, 그것을 견뎌내야만 한다.

 

원석과 서심, 이순의 마음은 선하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세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내용 중, 제대로 종규와 유정의 상황을 확인하려고 대화를 시도하는 건, 원석이 그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 오직 한 번이다.

그 이후 그들은 종규를 아동학대범으로 낙인 찍고, 있지도 않은 '피해자'를 만들어 유정을 구하려고 한다.

과연 마음이 선하다고 결과가 옳을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종규는 타인의 오해로 인해 아동학대범이라는 누명까지 쓸 뻔 했다.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인가?

 

안녕시 행복동.

안녕하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하다.

그저 각자의 상황만 있을 뿐이고, 각자의 생각만 있다.

선함과 위함이라는 포장지를 감싼 그저 그런 이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난 느꼈다.

대화의 부재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책을 그저 이야깃거리로만 보고 읽는다면, 아주 재미나다.

분량도 적고, 가볍게 읽기 아주 좋다.

하지만 난 책장을 덮을 때,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작가님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 기입하셨다.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를 지키고 건강히 키우자는 의견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뭐란 말인가?

열심히 일하고 겨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한 집안의 가장을, 그것도 한순간에 그 주체인 가족을 잃어버리게 된 가장을, 바깥에서 바라 본 외부인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학대범을 만들어버렸다.

원석은 트라우마로, 서심은 모성애로, 이순은 죄책감으로.

결국 종규가 학대범이 아닌걸 알았으니 된건가?

큰 상처를 입은 종규의 가슴에, 상처 하나를 덧댄 것은 아닌가?

 

결국 다연도 눈을 뜨게 되고, 서심은 출산을 하고, 이순은 자식들과의 연을 다시 잇게 되며, 원석은 불안 증세가 나아진다.

비록 오해가 풀리며 종규도 이웃들과 어울려지내게 되지만.....

이런 큰 스케일의 범죄가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된 상황이, 그저 그런 헤프닝으로 끝나고 '하하호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내도 되는 것인지는 끝까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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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안녕시 행복동입니다"

 

▶저자 : 한송희

▶장르 : 소설

▶출간 : 2024년 12월

▶소개 :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이라는 사업을 통해 제작된 소설로, 가상의 공간인 '안녕시'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를 둘러싼 오해의 이야기를 담은 책.

 

▶줄거리 :

'원석'은 안녕시 중앙동사무소로 발령을 받고, 첫 출근을 하게 된 주무관이다.

'원석'은 트라우마로 인해 휴직기간을 거치고 복직을 한 것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항불안제를 섭취하고 있다.

 

'종규'는 남태평양 한가운데서 참치잡이를 하는 선원이었고, 이번이 마지막 항해였다.

왠일인지 그날은 참치잡이의 대풍이 불었고, 선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고국을 향해 회항한다.

그러던 중, 위성전화를 통해 '종규'의 부모와, 아내, 그리고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자신의 딸이 탑승한 차량이, 음주 운전을 한 트럭과 충돌해 큰 사고를 겪은 것을 알게 되었다.

'종규'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아내 '다연'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딸 '유정'은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순'은 퇴직을 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으나 그것이 쉽지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게 된다.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도중, 자녀에 유무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망설임을 가진다.

과거 아이들이 어릴 때, 자식들을 둔 채로,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서심'은 중국인이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이다.

그녀는 현재 만삭인지라, 아이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해진 상태이다.

 

'종규'는 귀국하여 '유정'을 만난다.

하지만 '유정'은 자신을 돌봐주던 어른들은 모두 사라지고, 처음 보는 남자가 아빠라고 다가오니, 큰 혼란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다보니, 크고 작은 충돌들이 생겼고, '서심'은 그것을 목격하게 된다.

'서심'은 그것을 학대라고 오해했고, 서둘러 아랫집에 사는 '이순'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야기는 흘러가게 된다.

 

▶추천 대상 :

1. 묵직하지 않고 가벼운 문학을 즐기시는 분.

2. OTT등에서 영화를 고를 때, 액션보다는 드라마 장르를 자주 찾으시는 분.

3. 일상에서 능히 있을법한 이야기를 즐기고 싶으신 분.

4. 인물 서사를 그리는데 능한 분.

 

▶비추천 대상 :

1. 인물들이 다채로운 것을 꺼리는 분.

2. 임팩트 있는 장면을 원하시는 분.

3. 단순한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

 

▶우키북스의 한줄평 :

안녕시인데, 그리 안녕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행복동인데, 그리 행복한 기억만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데...... 왜 제대로 얘기들은 안해보고 자기들 멋대로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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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북스의 독후감 - 멸치생각 편

 

 

교보문고 포인트가 제법 쌓여,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새로운 신간들을 찾아보았다.

장르나 구분을 떠나서, 그냥 써치로 찾는 것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님이 아니라면 그냥 제목이 꽂히는대로 장바구니에 담는 편이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제목, "멸치생각".

멸치.....?

구미가 당기기에 너무나 완벽한 네이밍이었다.

이렇게 고르는 책은 사실 홈페이지에 기입해놓은 책 설명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가장 첫번째로 장바구니에 담았고, 바로 결제를 진행했다.

 

바로드림으로 결제했기에, 오랜만에 오프라인의 교보문고를 즐긴 다음, 구매한 책들을 수령했다.

그리고 바로 당황했다.

아니 난 세 권을 샀는데, 세 권의 뭉치가 "프로젝트 헤일메리" 한 권 보다 얇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뭐..... 분량이 중요한가?

내가 읽고 즐길 수 있으며 된 것이지.

그렇게 자위하며 난 출근을 하였고, 그 날 밤, 드디어 기대하던 이 책을 펼쳐보았다.

 

작가님의 약력은 독특했다.

우선 이 작품이 작가님의 첫작품이었는데, 작가님은 이전에 조각을 전공하신 미술가셨다고 한다.

그러다 미술관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셨고, 일상의 삶을 살아오다가 배우자분과 나란히 앉아 멸치를 손질하던 중, 떠오르는 생각들을 본인의 멸치 그림과 함께 집필하셨다고 하였다.

오, 역시 제목처럼 무언가 새롭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장을 열고, 20분도 채 안되어 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짧다.

그런데 울림은 크다.

이 책은 멸치다.

멸치로 시작해 멸치로 끝난다.

미술 전공자의 그림(조각이 전공이긴 하셨다지만....)을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림은 사실 그냥 그림일 뿐이다.

한장 전체에서 해봐야 2~300자 이내로 끝나버리는 그 짧디짧은 문장들이, 이 책을 커다랗게 만들어 준다.

자그마한 멸치 몇 마리가, 온가족의 메인 반찬의 베이스를 훌륭히 만들어 내는 것 처럼 말이다.

 

멸치는 놀랍게도 등푸른 생선이라고 한다.

난 늘 냉동실에 박혀있는 희멀겋게 말라버린 멸치의 모습만을 보았기에, 고등어나 꽁치 같은 등푸른 생선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멸치는 자신의 모습을 잃은 채로 냉동실에 갇혀 있다.

과한 몰입이라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은 없지만, 지금 이 나라의 청년들의 모습과 빗대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푸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이야기해야겠다.

등이 푸르렀던 멸치처럼, 청년들은 꿈 꿀 의무가 있었고,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젊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희게 말라버린 멸치처럼, 그 생기를 잃고 쾡한 눈을 한 채,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냉동실에 갇혀버린 것 처럼 말이다.

거기다 우리는 그 자그마한 멸치에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든다고, 대가리와 내장을 뜯어내버리고는 끓는 물에 넣어버린다.

고꾸라지는 경제와 삭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자아는 그렇게 뜯겨져버리고, 남들과 함께 사회에 넣어져버려, 바글바글 끓여진다.

 

멸치는 한낱 멸치다.

그런데 우습게도 우리도 그저 그런 멸치다.

드넓은 대양을 헤엄치며 아름다운 유선형의 선율을 보일 줄 알았으나, 수분기 없는 채로 얼려진채, 뜨거운 물 안에 던져지는 멸치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사랑으로 식탁을 채워나가는 우리의 엄마들에게는 멸치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다.

그 멸치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건강한 한 끼를, 아빠들은 가장의 무게감을 견뎌낼 원동력을,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들은 흐뭇함과 뿌듯함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가치 없는 것은 없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내 몸에 필요없는 것들을 배설물로 내뱉지만, 그 누군가의 배설물을 양분으로 생존하는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멸치가 우스운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멸치는 소박하지만 위대하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은 역시 우리에게도 있다.

하루쯤 좌절할 수는 있다.

냉동실에 갇힌 듯한 자신의 모습이 처량해보이고 지쳤다면 말이다.

그러나 언제가 되었든 멸치는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

맛난 육수가 되었든, 볶음이 되었든, 조림이 되었든.

그리고 우리도 그럴 수 있다.

 

멸치의 품위는 하찮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것들이 주는 울림은 그리 거대할 수 없다.

우리도 멸치다.

언제가 되었든, 탐스럽고 아리따운 식탁을 꾸며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는 그러한 멸치다.

 

끝으로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한 장면을 덧붙이며 이 글을 마치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냉동실 구석에서 멸치를 찾았다.

얼마나 묵었는지

바싹 말라서 색이 거의 사라졌다.

 

먹고사는 일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멸치가 멸치인 것을 잊으면

어느 날 냉장고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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